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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혁명의 아이러니와 디파이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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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진 법률사무소 비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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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베르사유에서 소집된 삼부회는 프랑스 구체제의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재정 파탄과 세금 불평등, 그리고 빵 가격 폭등 속에서 루이 16세의 왕권은 시장과 민중의 기대를 더 이상 담아내지 못했다. 평민들은 점차 ‘왕의 자비’라는 인적 신뢰에서 벗어나, 법과 제도라는 구조적 신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바스티유의 함성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신분이 아닌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갈망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역설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 혁명 이후 이어진 대프랑스 전쟁은 막대한 병력과 자본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혁명 정부는 점차 강한 중앙집중적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됐다. 결국 혁명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의 관을 쓰며 새로운 제정을 열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시작된 혁명이 다시 강한 질서를 낳았다는 이 장면은, 제도가 성장할수록 반복되어 온 오래된 패턴을 보여준다. 혁명은 종종 질서를 무너뜨리며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질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오늘날 금융의 세계에서도 낯설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관 중심 금융체계에 대한 신뢰를 크게 흔들었다. 이후 등장한 블록체인과 탈중앙화 금융(DeFi)은 특정 기관의 선의가 아니라 기술과 규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신뢰 구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은 기관 투자자의 참여 없이도 상당한 성장을 이뤄 왔다. 이제 법인 투자자의 참여와 제도적 편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시장이 한 단계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자산의 안전한 보관과 효율적 관리에 대한 수요가 커질수록 시장은 일부 영역에서 중앙화된 커스터디 인프라를 선택할 유인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탈중앙화를 표방하며 출발한 시장이 장차 중앙예탁결제기관(CSD)과 유사한 질서를 닮아갈 가능성은 혁명의 이상이 결국 또 다른 질서를 낳았던 역사와 어딘가 닮았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곧 중앙화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진화적 단계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느냐에 있다. 혁명이 스스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과 달리 제도가 시장의 속도를 앞질러 설계될 때, 시장의 역동성은 쉽게 위축될 수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 역시 결국 하나의 질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소수 인프라의 집중일지, 다양한 커스터디와 서비스가 경쟁하는 생태계일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역사가 보여주듯 새로운 질서는 종종 시장의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 설령 집중화가 된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결과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디파이 역시 어떤 금융 질서로 자리 잡을지, 스스로 증명할 시간을 조금 더 허락할 필요가 있다.


기사 링크: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690207